새로운 물건을 산다는 건 다양한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필요해서 샀다는 말도 "필요"의 조건만 충족한다고 해서 샀다는 말이 아니다.
취향에 맞는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단 말이 되시겠다.
내가 이 물건을 구매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필요해서 샀지만, 필요에 의해서만은 아닌.
스티브 잡스가 그렇게 좋아했다는 신발이다.
서른을 넘기자 마자 아킬레스 건염과 족저근막염 비스무리한게 생긴 나는 반스 운동화를 신고 무리하게 다니다 병이 도졌다.
꽤 오래 걷는 편이라(시장과 공장, 사전조사를 가는 날엔 노트북 든 백팩을 매고 6시간정도는 걸어 다닌다.)아플만 했다.
(운동도 안하고 8키로 빠졌던 그 여름엔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를 불쌍하게 바라봤다.)
뚜벅이인 내가 자동차 대신 선택하는 것은 당연히 신발아닌가. 건강이 악화됐다고 예쁜 신발을 포기할 순 없다.
데일리 슈즈이면서 폭신하고 발이 편하기로 유명한 신발들을 찾았다.
최근 나이키는 덩크를 미는 추세인데다, 조던은 하루종일 걸어다니는 내게 편한 신발은 아니었다.
과정에서 다시 눈에 띈 신발이 뉴발란스 992와 993, 그러니까 스티브잡스 운동화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일이 드물던 올 한해에도 비교적 핫했던 신발이다.
자주 출시되는 물건 치고 급작스레 엄청 핫했다. 심지어 출고가가 비쌌다.
한정판과 리셀의 파급력이 강해져서인지 왠만큼 한정판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올 해 모델로 나왔을 땐 딱히 내 눈에 띄진 않았다.
단지 전에 신고다니던 뉴발란스 신발에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던 나는 993과 992를 비교했다.
비교 기준은 XXBLUE의 거래가격이였고, 출시 후 꽤 지난 시점에서 둘다 출시가보다 10만원 정도 더 비싼 상태였다.
뉴발란스 992의 출시가는 약 26만원. 원래 가격도 비싼데 리셀시장에서 가격은 더비싸다.
993은 992의 출시가 정도의 가격이 되어있었고, 이 신발들을 데일리 슈즈로 상상을 하는 내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다른 신발들을 찾아봤다.
(손이 벌벌 떨린다.)
허나 다른 정보를 찾고자 하면 할수록 992를 경험한 경험자들이 남긴 마성의 후기들은 나를 잡아 끌었다.
작년 겨울에 샀던 패딩은 어쩐지 992를 위해 준비해 둔 기분이 들었다.
매 년 봄이 올 때 까지 후드티 1 벌로 삶을 유지하는 나는 모든 일이 이 신발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잡스처럼 이 신발을 신고 동대문 시장을 활보하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인상 깊었던, 자신감 넘치게 무대를 활보하던 잡스의 기운. 잡스의 신발은 내게 훌륭한 기운을 줄 것 같이 느껴졌다.
쿠폰 끼고 이래저래 33만원에 구매했다.
와 미친거 아닌가 싶다가도 작년 이맘때 염증 치료로 쓴 돈을 생각하면서 올해 병원 안가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인지부조화와 여러 구매 목적과 이유를 길게 늘어뜨려 쓴 글이다.
착용감은 확실히 발을 감싸주는 편안함이 있다.
아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발이 편하다.
밑창이 엄청 빨리 닳겠구나 싶은 푹신함을 느낄 수 있다.
맥스보다 편하다고 생각이 든다. 뉴발란스는 그런 면에서 실망을 시키지 않는다.
다른데서 실망시킨다.
실밥 마감 엉망, 접착 마감 엉망, 기타 마감 엉망이다.
안엔 부실부실하게 실밥이 다 터져 올라와있거나 마감되어있고, 바금질 위치도 좀 제 멋대로인 편인데,
후기에서 항상 말하는 창의 접합부위도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스티브잡스가 좋아했다고 보기엔 마감에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애플제품들의 마감은 이게 가능한가 싶을정도로 끝내주게 하니까.
그렇다고 신발에 불만이 있는가? 아니다.
엄청 마음에 든다. 사실 마감보단 가격이 마음에 안들지만, 내가 찝찝하게 생각하는 가격만큼은 잡스의 기운이 채워주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나의 데일리 운동화라는 말씀이다.
약 2년의 겨울을 잘 부탁한다. 나의 새로운 균형아
댓글 영역